백차유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라리 관둬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이 조금 선명해졌다가 빡빡한 휠을 몇 번 더 굴려서 그냥 빈 문서로 보이게끔 만들고는 길게 등을 젖혔다. 낡은 의자가 삐끄덕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딱 그런 비명이라도 지르면 좀 나아질까. 그럴리 없지. 현실은 그런 법이니까.
"아니, 이건 좀 너무 하지 않나."
그래도 역시 조금 억울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필 사건의 중심에 시의원 가족이 희생자 명단에 떡하니 올라와 있을 확률은 얼마쯤 될까. 이번주 로또는 단 하나의 숫자도 맞지 않았는데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시의원은 최근 몇 년간 레니게이드 관련 사고 대응 강화를 꾸준히 주장하며 지역 내 입지를 넓혀가던 인물이었다. 특히 의료•복지 예산과 연관된 위원회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만큼, 병원과 연구소 역시 그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병원과 연구소가 '레니게이드 사고'에 연류되질 않나, 해당 지역 UGN지부장이 증발하질 않나. 오늘 입수한 정보로는 개인적으로 해당 의원과 전 지부장의 실제적 충돌도 몇 번 있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정치는 백차유의 관심사조차 아니었다. 거기다 쓸데없는 고집까지 겹치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남는 건, 누구도 맡고 싶어하지 않는 구역이 되었다. 예산도 관심도 부족한 외곽지역. 그래도 상관없었다. 불평할 시간에 사건 하나를 더 처리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불평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업보인가."
이쯤되니 실소마저 나왔다. 그런 백차유에게 맡겨진 A시는 그간 외면해온 문제들을 모조리 들이밀기라도 하듯 복잡하고 지독하게 얽혀 있었다. 매 선거도 엎치락뒤치락 판도가 바뀌기도 하는 도시답게, 정치도 매우 중요한 업무가 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인데. 아주 잘나가고 있는 시의원의 가족이 레니게이드 사건의 피해자.
"제발"
당장 언론에 소리를 내겠다며 압박하는 그를 상대로, 백차유는 직접 찾아가 시간을 벌어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 노기어린 시의원 앞에서 기껏 벌어온 시간 동안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부장님 지원 가능하실까요?]
거기다 본래 구역의 에이전트로부터 들어오는 조심스러운 지원요청까지. 일단 백차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한 불부터 꺼야지.
백차유는 관자놀이를 꾹 눌러 압박하고 심호흡을 했다.
백차유가 유지은의 병실을 다시 찾은건 다음날 저녁때가 조금 지나서였다. 본래는 정해진 인원 외에는 방문이 불가능한 시간이었지만, 이럴때 사건 관련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계셨군요, 주희씨. 지은씨는 깨셨나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면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붉은 눈을 가진 여성이 예의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차유는 손짓해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오늘도 금방 가봐야해서...면목 없습니다."
그리고 협탁 위에 편의점에서 산 음료세트를 올려 두었다. 이걸로 사건 후로 두사람이 얼굴을 맞대는 것은 세번째였다. 피해자였던 유지은이 입은 물리적인 상처는 오버드의 힘으로 당일에 거의 수복이 되었는데 좀처럼 깨어나질 않았다. 해당 사건 현장에 있었던 강 산 요원의 진술을 생각해보면 조금 우려스럽기도 했다. 이대로...각성이라도 하면. 아니, 차라리 이젠 무사히 각성하길 바라야 할지도 모른다. 지은씨가 숨을 거두기라도 하면. 백차유는 속이 쓰렸다.
"그나저나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리고 역시 곤란하기는 이 자리에 있는 또 한 사람. 어쩌면 백차유보다도...곤란해질 수도 있는 사람. 차유는 그녀가 좀 더 걱정스럽기도 했다. 죄책감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떤 감정보다 쉽게 사람을 상하게 한다.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이 되는 것도.
"마침 저도 아직 식사 전이라 배가 고픈데, 같이 드시죠. 이 병원 근처엔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죽집들이 몇 되거든요."
걱정스럽게 돌아보는 그녀를 차유가 가볍게 채근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뱃속을 따뜻하게 채우게 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백차유는 죽집 앞에서 그녀에게 이른 인사를 건넸다.
"전에 드렸던 이야기는 지은씨가 깨어난 뒤에 하죠. 그리고 너무 염려치 마세요. 꼭 깨어나실테니."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은씨가 깨어났을 때, 지금 주희씨 얼굴 보면 슬퍼할겁니다? 그러니 입맛 없더라도 챙겨 드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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