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유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이라고 퉁치면 그의 동생 백설희는 조금 화를 낼지도 몰랐다. 그정도의 기간이었다. 하지만 늘 삶이 다망했던 그를 삶은 호락호락 내버려두질 않았다. 막 진동모드로 돌려 놓은 참인 휴대전화 액정에 제법 섬뜩한 마크가 떠올랐다. 그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퇴근은 물건너 갔다.
 
정확한 전후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재고 따지는 것은 백차유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확히는 그에게 그런식으로 일처리를 할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도, 물리적인 여유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일이 대부분인 탓이다.
 
"한명이라도 좋으니까 병원쪽 먼저 보내놔." 
 
그리고 대부분은 그 와중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움직일 필요도 있었다. 백차유는 곤란함이 잔뜩 묻어나는 상대방의 말이 제대로된 단어 하나를 구사하기 전에 전화를 끊고 자신의 장비를 챙겼다.
우선은 ㅁㅁ연구소.
수틀리면 가장 골치아픈 일이라고 판단했다. 아마 자신의 요청같지도 않은 요청으로 당장 현장으로 파견될 요원이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글쎄. 세상에 만약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백차유의 인생이 늘 그런 식이었다.
 
좋은 소식은 그의 걱정보다 FH조직과 그래도 제법 이름이 있는 연구소의 결탁이 그리 끈끈하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관상을 믿는 편은 아닌데도 연구소장은 욕심이 그득한 놀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UGN소속임을 밝히는 신분증을 꺼내들며 삐딱하게 저를 내려다보는 피곤한 인상의 남자를 올려다 보는 얼굴엔 당혹감과 공포가 서렸다.
적어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는 모양이지.
혀를 차는 때에 예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미안! 사실은 병원에서 거래하기로 했나봐. 이자식들 이몸을 속여먹다니 한...'
 
한숨을 쉬거나, 상대방에게 화를 낼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백차유는 전화를 끊었다.
 
"XX병원으로 간다. 소장은....작업실에 던져놔."
 


 
"이런 벌써 상황종료인가요?"
"지부장님...!"
 
백차유는 차라리 딱 기절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라는 실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상황이 몹시 나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뒷처리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하필 파견된 요원이 A지부 소속 칠드런일줄이야. 물론 어중이 떠중이 초짜들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성년이 아닌 그들이 홀로 임무에 파견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극히 특이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게 그 특이한 경우인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아니, 생각하지 말자.
 
"누구예요? 늦었는데요...."
 
안경을 쓴 남자의 말에 그저 쓰게 웃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하나 반박할 구멍이 있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제 등장에 퍽 반가운 얼굴이 된 어린 요원에겐 물러나 있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흠...저는 백차유라고 합니다. 공무원....비슷하죠."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한번 더 확인했다.
 
"상황을 보니...모두 평범한 분들은 아니시군요? 그렇죠?"
 
사상자가 발생했다. 잔혹하게 목이 떨어져 나간 시체 하나. 몸이 난도질당한 시체가 하나. 그리고 아직 피로 돌아가지 않은 검이 정확히 이마를 관통한 시체가 또 하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적어도 그들의 사망이 당장 신문에 대서특필될 사안은 아니라는 것 정도. 
 
"병원에...문제가 있는걸 알고 계셨어요...?"
 
그러면 또다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의문이 뒤따라왔다. 피범벅이긴해도 복장만 봐도 병원 관계자인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 속에 '문제'가 비단 지금의 상황 자체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물론 알고서 병원에 온참이긴 해서 역시 뾰족하게 할 말은 없었다는 사소한 문제도. 입도 못댈 긴장감이 팽팽해지는 순간, 그 사이로 넉살좋게도 남자 달건이 끼어들었다. 참 고마운 일이지. 
 
"뭐...보시는대로요. 그런데 저 녀석들이 의뢰한게 있는데요."
 
제 앞에 불쑥 내밀어지는 봉투를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인상을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폈다. 소장이 말했던 연구원이 이 남자인 모양이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여기서 백차유는 또다시 한가지 결정을 해야했다. 메뉴얼을 따를 것인지, 백차유 식으로 할 것인지.
 
"본래는...여러분의 기억을 소거하는게 맞습니다만."
"그 뭐냐...맨 인 블랙?"
 
예. 뭐, 가장 정확한 비유긴 합니다.
평소라면 그런 대꾸도 했을 테지만 저를 노려보는 간호사의 시선에 그런 실없는 농담은 삼켰다.
 
"아무래도 요즘 분위기가 심상찮죠?"
 
대신에 뾰족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사안들에 대해서 조금 터놓고 얘기해볼까 했다. 정확히는 현재 XX병원과 ㅁㅁ연구소는 지부장 백차유의 담당구역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떠넘겨졌다,고 어디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상대가 없을 뿐더러, 정말로 그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닥친 일은 처리해야하는 법이다.
 
"어쩌면 여러분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자신을 기다리는 대원들에게 진입을 명령한 백차유는 제 명함을 꺼내 두 손이 온통 피투성이인...붉은 눈을 한 여성에게 정중히 한장을 건네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피해자분에 대한 조치는 저희쪽에서 담당하겠습니다."
"앗...네...잘, 부탁드립니다...치료도..."
"네,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안경을 쓴 연구원, 그리고...자신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백발의 간호사에게도 명함을 한장 건넸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가능한 선에서 이후에 언제라도 질의응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당장은...여기서 할말들은 아닌 것 같아서요."
 
차유는 피곤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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