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된 이름으로 자리를 안내받은 피에르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도 못한 채 조지프의 앞에 섰다. 당연히 서야 할 인물이 아닌 다른 사람의 등장에 놀란 얼굴을 한 조지프는 이곳 지역청의 특별반 반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전에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 아는 이가 듣는다면 까무러칠 얘기지만 실상은 버젓이 국가의 녹봉을 받아먹는 유능한 공무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특히 연이 닿아 있는 이것저것을 활용해서.
“그놈은?”
“오는 길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요. 하하하, 잘 지내셨죠?”
“뭐 그렇지. 우선 앉아라.”
조지프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해도 제법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축에 속해 있는 피에르를 앞에 두고도 그는 거릴낄게 없었다. 오히려 매번 그의 부름에 부담을 느끼는 쪽은 상대 쪽이었다. 히카르도는 그래도 꽤 그를 반쯤은 아버지 취급하며 따르는 것 같기는 했지만, 피에르는 솔직히 그리 달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피에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에 앉았다. 항상 히카르도는 그와 만나기만 하면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독에 빠졌다 나오곤 했다. 잘 마시는 편인데도 인사불성이 되곤 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마셔서는 끝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것만큼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피에르는 이미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딴 와인을 집어 드는 조지프에 맞춰 제 잔을 잡았다. 히카르도에 비하면 술이 그리 강하지 않은 피에르는 두 번째로 채워진 잔을 비워내며 애피타이저로 나온 마늘 빵을 집어 들었다. 아직 본 요리가 나오지도 않았건만, 속이 울렁거릴 것만 같았다.
“요즘 네놈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네? 무슨 짓이라뇨?”
비기가 무섭게 다시 채워지는 잔을 후다닥 집어 든 피에르는 조지프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꾸했다. 물론 반은 진짜 모르기도 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실제로 히카르도가 자신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그저 히카르도가 이미 물밑에서 이뤄진 작업들을 제게로 던져주면 그제야 뭍으로 끄집어 올려 그럴듯하게 구색을 갖추는 게 피에르의 몫이 되곤 했다. 또 그런 일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피에르는 이번에는 살짝 목만 축이고 다시 잔을 내려 두었다.
“네놈이 같이 사업한다고 할 때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더니.”
혀를 차는 조지프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피에르는 히카르도와 함께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조지프가 보여준 표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놈이?’
그때도 부어라 마셔라, 밤을 잊었지.
“그렇게 나대다가는 제명에 못 죽는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낮게 궁시렁거리는 그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선명해졌다. 잘도 히카르도를 이용하는 주제에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 것인지. 피에르는 이런 면 때문에 더욱 그가 맘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이용해먹기만 하면 대놓고 둘 사이를 떼어놓아 보기라도 할 텐데, 이런 식으로 애매한 경계선에서 히카르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제법 버젓하게 굴러가는 회사의 대표다 보니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정식으로 사업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다. 이래서야 과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피에르는 하루빨리 저 영감이 죽거나 하다못해 경감자리에서 떠나길 빌었다. 이전에 술김에 히카르도에게 속내를 살짝, 아주 살짝 내비쳤다가 도리어 역정을 듣고 나선 입 밖에 내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본심이었다.
“너도 그놈이랑 뒹구냐?”
“...”
실로 멍청한 질문.
피에르는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싫은 또 다른 이유. 지금...에와서야 정확히는 그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과거에 히카르도가 그런 일을 강요받는 것을 알고서도 눈을 감았던 주제에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잘도 입을 놀려댔다. 히카르도가 어떤 기분으로 그런 짓을 당했는지 알 생각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니긴, 표정만 봐도 알겠구만...아니, 아니면 허울 좋은 친구라는 타이틀 때문에 말도 못 꺼내고 있는 불편한 곳을 건드렸나?”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피에르의 기분은 당연히 그만큼 더 나빠졌다.
“내가 계기를 마련해주지. 특별히 말이야.”
괄괄하게 웃음을 풀어낸 조지프는 한 잔이 채 남지 않은 와인병을 잡고 병째로 마시고는 자신의 옆자리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피에르의 앞에 내던져진 것은 황색 서류 봉투였다. 피에르는 결국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뭡니까, 영감님.”
“뭐긴 뭐야~ 조금 전에 말했잖아. 네놈이 그놈이랑 뒹굴 수 있는 계기라니까?”
피에르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때 마침 룸의 문이 열리고, 한껏 조지프의 취향대로 주문되어진 메인 디쉬가 차례차례 테이블 위를 장식했다. 그는 세 병의 레드 와인도 추가로 주문했다. 피에르는 혹시라도 웨이터에게 내용이 보일까 조심스럽게 안에 든 서류를 꺼내 들었다. 몹시 기분이 나쁜 언사와 달리 우선 보이는 것은 평범한 활자가 나열된 서류들뿐이었다. 심지어 히카르도에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누군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생의 내력이 상세하게 적힌 프로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뭡니까?”
“하여간 이래서 딱딱한 놈은 질색이라니까”
딱딱하고 자시고, 누군가의 프로필만 덜렁 내밀면 이걸로 무엇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지 않나? 피에르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저희,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만...”
원래도 취급하지도, 취급할 생각도 없는 분야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쁘지 않은가. 이 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모르는 이가 없는 홀든가 그룹의 장남 암살 임무라니. 그런 건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성공한다고 해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드디어 이 영감이 노망이 났나?
“하하하하”
피에르의 고심이 가득 하다못해 어둡게 질리는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던 조지프는 다시 박장대소했다. 조지프도 자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걸 시킬 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상당히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현실에서의 사건들은 연관성조차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조지프는 처음 자신이 이 일을 전달받았을 때 드디어 자신이 노망이라도 났나 싶었었다. 하지만 까짓거 못할 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