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도는 애써 웃었다. 아니 웃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것이 오히려 서글픈 표정에 혼탁하게 섞여들어 더 괴로운 표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어야 했다. 적어도 자신으로 인해 다이무스가 느낄 괴로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었다. 그게 지금 히카르도가 자신의 연인인 다이무스 홀든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저의 발치로 떨어진 그의 태도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손에 잡은 이상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것을 이렇게 바닥에 내팽개치는 것은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보기와 다르게 겨우 들어 올리는 게 고작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하는 태도는 수갑이 채워져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두 손으로 드는 것도 꽤나 힘겨웠다. 하지만 좀처럼 쥐려 들지 않는 그의 손에 겨우겨우 들려주는 것이 배는 힘들었다.
“고개를 들어라, 다이무스.”
힘겹게 태도를 쥔 다이무스의 손을 꼭 감싸 쥔 히카르도는 조금 편해진 미소를 지었다. 묵직한 태도를 제 손으로 들어보니 위태롭게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도 같았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아무런 말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다이무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괴롭거나 슬프거나, 혹은 아프지 않은 표정이 보고 싶었다.
“다이무스.”
떼를 쓰듯 그의 이름을 부르면 다이무스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 손 아래에서 꽉 쥐어진 주먹을 느낀 히카르도는 낮게 웃었다.
“가족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다. 그렇지?”
히카르도는 혹여 다시 그가 검을 떨구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먹을 만지작거리다 천천히 손목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고 어깨를 지나 드디어 다이무스의 두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어 고개를 들게 하면 다이무스는 순순히 히카르도의 손길에 응해주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두 눈의 투명한 보석이 무섭게 얼어붙어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차가운 표정에 히카르도는 주눅이 든 아이처럼 어깨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래도 이제 와서 더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다이무스...나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네게 두 명의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심 부러웠지. 거기다 고향에는 부모님도 건강히 잘 계신다고 하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가 사랑한다고, 계속 곁에 있겠다고 말해줬을 때. 비록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말하지는 못할지언정 네가 내 가족이 된 것 같아 더 기뻤다.
“네 덕분에...비슷한 걸 받았다고 생각해.”
히카르도는 애써 뒷말을 삼키며 조금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나 때문에 네가 네 가족을 잃는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다. 이미 많은 것들을 빼앗으며 살아왔어.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건 너였잖아.”
그렇지? 라고 되물으며 히카르도는 다이무스가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굳게 다물린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것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혀로 살짝 핥아 올리곤 장난스럽게 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한결 편해진 히카르도의 표정과 달리 다이무스는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채로 창백하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첫키스마냥 조심스럽게 입술이 맞닿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히카르도는 멈추지 않고 고집스럽게 입술이며 콧등에 장난을 걸었다.
“더는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사실은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거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이무스가 괴로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다이무스 스스로 히카르도 바레타의 목숨을 끊어놓지 않으면 그의 소중한 사람들이 아스라이 사라질 것이었다. 다이무스는 선택해야 했다. 눈앞의 남자를 죽이고 가족을 구할지, 가족을 희생해 눈앞의 남자를 구원할지. 답은 뻔한 것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다이무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았다고 히카르도는 생각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시절에 버려져 다이무스를 만나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사랑받아 본적이라곤 없었다. 그것이 실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황량한 삶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욕심을 부려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면 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걸로 만족하자. 최대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려댔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정 속의 다이무스는 지금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히카르도는 그 생각만으로 손끝이 저릿해졌다.
“거기다 네가 나를 죽여주는거잖아. 불만은 없다.”
“멋대로...”
“?...”
“멋대로 지껄이지 마라!”
그리고 찰나에 날아든 주먹을 히카르도는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골이 다 흔들린 것처럼 시야가 뱅뱅 돌았다.
“내가 죽여주니까 불만은 없다고?!”
그때 바닥에 쓰러진 히카르도의 위로 다이무스가 올라탔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다이무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히카르도의 정신이 번뜩 드는지 작게 어깨를 떨었다.
“사랑한다고! 평생 곁에 있겠다 말한 상대를 죽여야 하는 나는 안중에도 없나?!”
히카르도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최대한 애써 가라앉힌 마음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이무스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니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프도록 턱을 움켜쥔 손이 똑바로 시선이 부딪히게 하였다.
“그래서 가족을 버리고 나를 택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
“너도! 가족들도!”
답지 않게 흥분해 소리치는 다이무스를 가만 바라보고 있던 히카르도는 그대로 다이무스의 말을 끊었다.
“그건 말이 안 돼, 다이무스. 이 빌어먹을 장소에 갇혀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흡사 비명이라도 지르듯 터진 외침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의 벽에 부딪혀 어지러운 메아리를 만들었다. 딱 그것이 현실이었다.
“정신 차려. 이곳에 너와 내가 밀어 넣어진 것부터가 이미 끝은 정해져 있다고.”
자신보다 다이무스쪽이 더욱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며칠간 제대로 식사는커녕 물도 몇 모금 마시지 못한 상처투성이의 몸은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더욱 기운이 빠졌다. 히카르도는 바짝 긴장했던 몸을 풀어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의 경고음이 울렸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는 다이무스의 손에는 여전히 제가 힘겹게 들려준 태도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다음 벨이 마지막이다.”
“...”
“다이무스... 마지막 부탁이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게 만들지 말아다오.”
“....무슨...소릴 하는 거냐, 히카르도.”
“이대로 널 사랑할 수 있게 해줘.”
생각보다 크게 울적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내뱉는 목소리가 다시 저의 귀로 파고들어 오는 말이 퍽 히카르도에게 마지막 응원처럼 느껴졌다. 자신에게 보내는 낯선 격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다이무스 홀든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벅찰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항상 다이무스는 조금만 더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했었는데, 드디어 해낸 기분에 칭찬이라도 받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것에 대한 것은 이미 정해놓았다.
“널 사랑할 수 있는 채로 죽게 해줘.”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다이무스도 지금 히카르도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네가 좀 더 널 사랑하게 될 때마다 원하는 걸 해주도록 하마.’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웃는 히카르도의 얼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다이무스의 두 눈에는 아직도 한가득 슬픔이 고여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아픈 것이어서 떨어지고 다시 차오르는 것에는 피가 섞여들었다. 아직 누구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히카르도가 다이무스를 사랑한 채로 죽는다면 다이무스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약속이었고, 히카르도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