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이 화를 내며 막 방을 빠져나간 이의 마음을 대변하듯 쾅-하고 세게 문이 닫혔다. 아이작은 여전히 미동도 않고 의자에 앉아 길게 테이블 위로 두 다리를 곧게 뻗어 두 눈을 감고 있는 사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뜻 낮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도 했고,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남자긴해도 그가 조금 전 방을 나선 이에게 취하는 태도는 특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아이작이 사도, 제키엘의 마음을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 터였다.
많은 자원과 시간을 들여 맞이한 자신의 신도를 대하는 태도치고는 무척 성의가 없었다. 아니 성의가 없다기보다는 애매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가혹하리만큼 거대한 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소년의 구원자 행세를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소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 버리는 것이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아이작이 보기에도 소년은 제키엘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저 뻔뻔한 낯짝의 사도가 곧잘 지껄이는 그럴듯한 언변 정도면 됐을 터였다. 하지만 제키엘은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줄곧 저렇게 눈을 감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의 기도따위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오만하고 거북한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흥분한 소년이 사도에게 다가선 순간, 망설임도 없이 소년의 목덜미 앞으로 뻗친 테라듀 가시는 무르지 않았다. 그 찰나에 소년의 목과 뺨에는 날카로운 생채기가 새겨졌다. 명백한 거부였다.
“벌써 만족하면 곤란하거든.”
한참이 지난 후에 제키엘은 느릿하게 가면의 남자의 질문에 답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이미 아이작의 관심 역시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저 멀리 던져지기 직전이었기에 들은 채도 않고 문가로 향했다.
“원래 신성한 재물을 준비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제키엘 역시 그것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서.”
제키엘의 입술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하지만 곧장 자신의 손을 들어 입술을 만지작거린 뒤에는 평온한 미소가 걸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잔혹한 ‘절대자의 사도’가 감히 그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큰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어낸 소년, 이하랑은 그런 제키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직 어린 신은 완전히 제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한 그 힘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의 절대자, 미래의 필멸자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조금 더 분노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분노는 이성을 불태우고, 자신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태워 오직 이 제키엘 앞에 서게 될 것이니. 그때에는 내 작고 어린 신에게 나를 허락해도 늦지 않으리라.
제키엘은 터지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결국 가면의 사냥꾼이 방을 나서고 난 뒤에도 한동안 그 웃음은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