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의 몸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그 기분 나쁜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이미 제 목소리에 늦게 반응을 보이던 녀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히카르도가 거래의 조건이 되었을 때,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아마도 평생을 한 고민은 우스울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녀석에게는 가혹한 조건을 견뎌낼 여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다이무스 홀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당하며,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그럴 가치조차 없는 조건들은 묵살당해야만 한다. 고작해야 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바라는 것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거대해서 도리어 웃음이 나오는.

그럼에도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것은 결정에 따라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들이 원하는 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의 분풀이의 결과만이, 오롯이 그들의 원망을 받고 희생을 짊어진 너만이 남았다.

 

"히카르도..."

 

조심스럽게 너를 안아 들면 맥없이 늘어진 몸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조금 더 단단히 품으로 붙들어 당겼다. 상대가 너무나도 나빴다. 히카르도는 결코 약한 능력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 능력자들에겐 한없이 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많고 많은 수식어 중, 혹은 누명 중 하나인 무자비한 학살자와는 아귀가 맞지 않는, 그는 그런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시끄럽게 그의 주변을 맴돌던 벌레조차도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 어째서일까.

 

"눈 좀 떠봐라."

 

워낙에 예민했던지라 곁에 다가가 어깨라도 짚으려 하면 곧잘 잠에서 깨어나던 그였다. 이렇게 품에 안고 그 이름을 불러도 깨지 않는 것은 얼마나 피곤했을런지 짐작하게 했다. 축축하게 제 품을 적시는 녀석의 피가 아니라도.

 

"히카르도..."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가 맥없이 갈라졌다. 이번만 지나면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를 지킬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강행했던 일들이었다. 회사와 연합, 그리고 홀든을 위한 너의 희생을 고스란히 되갚아 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으면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텨주지 그랬나.

버티지 못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는 결국 녀석에게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짊어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혼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는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

그렇게 호언장담한 주제에. 꼭 끌어안은 네가 차가워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혹시라도 내가 죽게 된다면...불멸자가 아니게 된다면...그때만이라도, 날 혼자 두지마.'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나는 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전할 수 없는 나는, 너를 그리워할 자격도 없는 나는, 그렇게 너의 이름을 되뇌일 뿐이다.




'P >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슬바레] 1  (0) 2013.12.30
[데샹바레] 조각  (0) 2013.12.26
[데샹바레] 거짓말쟁이 썰  (0) 2013.12.04
[데샹바레] 썰  (0) 2013.11.13
[고어][마틴바레데샹] 끝과 시작  (0) 2013.11.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