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솔직한 감상은 불쾌함이었다. 의식을 의도치않게 잃었다 차리면 으례 그렇듯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온몸이 무겁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인식보다도 먼저 눈에 비친 익숙한 모습에 슬쩍 왼쪽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간다. 그래, 그러고보니 잘도 내게 그런 말을 지껄였었지. 둔하고 묵직한 통증보다도 짜증이 좀 더 자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마치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숙인 녀석은 아주 작고 초라해보였다.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지 그의 욕심많은 벌레들이 그 주위를 맴돌며 그 살을 갉아내고 있었다. 


  피식- 불쾌감도 뒤로, 그 안쓰러운 모습에 손을 뻗으면 내가 금방이라도 눈 앞에서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제 손을 꼭 쥔 모습이 처량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까미유.

거듭되는 진심을 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낮춰 사과하는 녀석은 절망적여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색이 짙은.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만 엉망으로 번져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이내 싸늘한 표정을 꾸며 그 손을 뿌리치려하면 조금 전까지 꽉 쥐고 있던 주제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손을 놓아버리는 꼴이 우스웠다.


"이제 나같은 건 지긋지긋하잖아?"


  마음에도 없는 말. 너의,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이미 녀석에게 존재하는 것이 온통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짓말. 날카로운 비수. 


"나가줘. 보기 싫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꽉 다물린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너무나도 솔직히 그 아픈 모습에도 이쪽은 오히려 유쾌해진다.



"나가"

"까미유..내가..모두 잘못했다.."


이제


"여러번 말하게 하지마"

"......"


아무것도 듣지 못할 테니까.


"아니면 정말로 이대로 끝내고 싶은거야?"


  놀란 듯 작게 움찔거리는 손가락하나도 모든 것이 예상대로, 이미 모든 것은 자신에게로 기울어있었다.


"지금은...나가."


  피곤한 듯 다시 일으켰던 몸을 침대로 뉘어 눈을 감으면 곧 녀석의 조심스런 발걸음이 옮겨진다. 그리고 다시는 너를 소흘히하지 않겠노라고. 그런 의미없는 말이 작은 문소리와 함께 바스라졌다.


  그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이제 넌 내 목소리만 들릴테지. 나만 보일테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네가 감히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착각에 빠져서는 나를 설교하려 들었던 벌로. 넌 이제 그렇게 평생 나만 보고, 내 목소리만 듣다가...그렇게 죽는거야, 히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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