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린비
사랑하는 민그린의 생일기념.
문호 스트레이독스 [다자이] 단편
생일 선물이지만, 화사하진 않고 우울하고 우중충합니다.
그대가 나에게 죽음을 선고하니,
나 비너스가 당신의 사랑을 저주하노라.
나의 죽음 이후로 너의 사랑에는 슬픔이 따르리라.
가장 큰 사랑을 나누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을 즐기지 못하리라.
비너스 『사랑의 저주』
宣告
그것은 아주 갑작스러운 선고와도 같았다.
오다 사쿠노스케에게도,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이 선고가 어느 누구에게 더 가혹한가 견준다면 혹자는 오다 사쿠노스케의 손을 들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로 그럴 것이라, 다자이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없이 제게서 등을 돌려나서는 오다의 걸음을 다자이는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그를 붙잡았다가는 더 크게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이 박힌 듯 얼어붙은 채 손조차 뻗을 수 없었다.
아니, 이미 미움 받아 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혼자 이렇게 남겨져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함께 이곳을 나섰겠지.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반드시 잃는다.
새삼 자신을 속이며 애써 꽁꽁 감춰두었던 어둠이 속살거리며 다시 말을 걸고 있었다. 다자이는 거칠게 그 어둠을 끝도 보이지 않는 제 고독의 항아리로 처박아 넣었다. 지금은 조금 전에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답지 않게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식기들을 모조리 옆으로 쓸어내렸다. 이곳 레스토랑의 자랑인 접시며, 유리잔이 속절없이 부서지며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그 무례한 대접에 항의라도 하듯 튀어 오른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다자이의 뺨을 스쳤다. 날카로운 통증이 새하얀 뺨에 선명하게 붉은 빛을 그렸다. 다자이가 낮게 신음했다.
벌어진 미세한 틈으로 비집고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었다. 제 어둠보다도 깊숙이,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밑바닥에 스며들어 있던 저주가 그 틈새로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기괴하고 비틀린 여자의 웃음소리가 그 좁은 틈새로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결국 다자이는 참지 못하고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저주는 기어코 균열을 작은 구멍으로 뚫어내며 진동했다.
다자이가 소리쳤다. 다자이의 안에 숨죽이고 있던 붉은 저주가 잔뜩 웅크려 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오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 하나 그의 행방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된 임무랄 것도 없는 허드렛일이나 도맡아 하던 오다의 부재는 누구에게든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다자이는 독주나 다름없는 것을 속도 없이 들이켰다. 그래도 취하기는커녕 머릿속에 들어찬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을 지워낼 수조차 없었다. 후회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원망이라고는 더더욱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웠던 적은 단연코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손에 넣기 어려웠던 남자, 오다 사쿠노스케에게 자신의 마음을 떠넘기듯 슬쩍 내보였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저히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나약한 기분에 휩싸일 때면 일부러 그를 멀리했다. 일 핑계를 대기도 했고, 도망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옆에 딱 붙어서는 저를 흔들어대는 오다 사쿠의 기가 막힌 오지랖에 못이기는 척, 가슴에 응어리진 기침을 가볍게 토해냈었다.
‘내가 자네 삶의 이유가 된 건가?’
돌아오는 대답에 다자이는 일순 말을 잇지 못했다. 제 마음 속 어둠 때문일 수도 있었고,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다는 너무나 가볍게 웃으며 그 큰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왔다.
‘거절할 수 없겠군.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다자이라니.’
철없는 어린아이의 구애를 적당히 받아넘기는 어른의 태도와도 같은 모호한 허락이라고 다자이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때 스스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오다가 곤란한 듯 웃으며 몇 번이나 자신의 두 눈가를 손이 다 축축해지도록 쓸었다는 것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아주 행복한 기억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달리 두 사람 사이에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으나, 부쩍 그의 손길이 다자이를 어루만졌다. 위로이기도 했고, 격려이기도 했다. 또는 그 나름의 애정 표현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다자이는 전에 없이 조금씩 더 생기 있게 빛났다. 그의 변화는 크든 작든 포트 마피아 내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 정도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검은 터널처럼 어둡게만 보였던 다자이 오사무가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생기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 특히 그랬다.
그래서 오다가 모습을 감춘 뒤로,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뒤늦게 그의 부재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고 여겼건만, 그의 빈자리는 상당한 여파가 있었다. 보다 못한 포트 마피아의 수장인 모리 오가이가 다자이를 불러들인 것이 그 반증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술 냄새에 모리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오다를 향한 다자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자이의 마음이 오다를 향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그렇기에 지금 다자이의 행색에 던질 질문은 한 가지였다.
“그와 무슨 일이 있었지?”
뻔한 연인사이의 싸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그런 어린애들 장난 같은 싸움을 할 리도 없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한 명은 잠적을 타고, 한 명은 망가져서는 술에 빠져 산다는 건 두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보스는, 알고 계셨습니까?”
무엇을? 모리는 당장 되묻는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포트 마피아의 검은 개가 물어 죽였던 여자 중에 비너스가 있었다는 것을?”
술냄새를 풀풀 풍기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물음이었다.
비너스.
모리는 책상위로 손가락을 굴렸다. 그런 그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모를 리 없는 이름이었다. 처리에 꽤 애를 먹었던 여자. 끝내는 다자이를 이용해 처리했던 것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은 왜?
“보스가 데려온 오다 사쿠노스케가 그녀를!”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물음인 동시에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단 한톨도 내비치지 않았을 정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뒤범벅된 호소였다.
다자이는 다시 잔을 내려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완전히 껍질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펼친 붉은 저주는 천천히 그를 침몰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저주는 그가 ‘사랑’에 빠질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렸을 테니, 기세도 등등했다. 아니, 어쩌면 ‘그날’부터 꾸준히 그녀의 독에 잠식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지독한 외로움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공허를 일깨우며, 도저히 혼자서는 버틸 수 없게 감정을 야금야금 집어삼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이능력조차 망각한 채 다자이는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여태 도망쳐 본 적이 없었건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자신의 업보로부터 다자이는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루빨리, 오다가 자신을 찾아주었으면 했다. 그는 자비로운 사람이니 자신을 오래도록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좋았다. 이제 더는 그가 곁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제 안의 허무가 저를 덮쳐 천천히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하ㅡ”
다시 잔을 채우려 병을 기울여도 완전히 비어버린 병에서는 몇 방울의 술만이 오목한 입구를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것을 건성으로 두어번 흔들어 테이블 위에 다시 내려둘 때였다. 소리도 없이 익숙하면서도 차가운 사신의 낫이 다자이의 뒤통수에 닿았다. 다자이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자이는 반쯤 녹은 얼음이 든 잔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지금 당장 돌아보고 싶은 것을, 뒤돌아 그를 끌어안고 싶은 것을 애써 꾹 눌러 참았다.
“다자이.”
그토록 그리웠던 이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있는 힘껏 눌러 참은 다자이의 입술 끝이 파리하게 질려 떨려왔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이 불렸다. 다자이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겨우 입을 떼었다.
응,
그 신음과도 같은 한마디가 겨우 조막만하게 터져 나왔다.
“도저히 자네를 용서할 수 없었어.”
알고 있어.
“그녀는ㅡ”
그녀는 당신의 비어있던 마음을 채워준 사람이니까.
알고 있었다. 오다에게 자신이 포트 마피아에 들어온 이유를 털어놓았을 때, 그가 답례처럼 건네왔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바로 ‘별이 된’ 그 사람이 비너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오다가 사라진 며칠 동안 수도 없이 고민해본 질문이었다. 하지만 몇 번을, 몇 백번을 더 생각해봐도 그럼에도 자신은 오다를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결론 내렸다. 바로 그 점이, 오다에게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다자이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다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몇 번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를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복수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은 절대로 사람을 쓸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할 수 없었다.
“다자이, 나는 자네에게 복수할 생각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가 다자이의 머리 위로 천천히 흘러 넘쳤다. 거의 턱밑까지 차올라 넘실거리던 붉은색의 저주가, 그녀의 분노가 천천히 기세가 꺾이듯 밀려나가고 있었다. 오다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것만으로도 자다이는 충분히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다 사쿠노스케. 당신이 나의 삶의 이유다. 이제 와서야.
“하루는 별이 된 그녀를 생각하며 울었어. 또 하루는 자네를 생각하며 울었지. 그리고 또 하루는 자네를 용서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네. 그 다음날은 자네를 사랑하게 된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분노했고, 오늘은 하루 종일 어떻게 해야 자네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
당신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줄 알던 사람이었나, 감정이 풍부하게 흘러넘치던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자이는 서글프게 웃었다. 하루종일 자신을 생각하며 울었을 당신을 떠올리면 바보처럼,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
오다는 다자이의 웃음에 평소처럼 거울을 비추듯 짧게 웃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혼자 내버려둘 수 없기에 손을 뻗었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져버릴 것 같은 당신을 모른척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제 서툰 손길에도 곧잘 기대어오는 당신이 좋아졌다. 당신의 곁에 있으면, 함께 자신의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그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철컥-
격철이 세워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잠재웠다. 다자이는 조금 고개를 떨구었다.
“오다 사쿠.”
목이 멨다. 이렇게 그를 부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그랬다. 죽기 전에, 한 번쯤 그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허락해줄 것이라고.
“오다 사쿠...?”
제 뒤통수를 서늘하게 조준하고 있던 총구가 거둬지는 순간, 다자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에 넣을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잃어버리고 말지.
저 깊은 곳에 처박아 두었던 어둠이 어느새 다자이를 끌어안고 기쁨의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모든 게 너의 탓이야.
네가 손에 넣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야.
몇 번을 부정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다자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 슬픔이 고여 흘렀다. 소리 없는 비명이 길게 터져 나왔다.
“자네를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주게. 다자이.”
당연하지,모두 너의 잘못이니까.
이럴 수는 없었다. 모두 다 제가 잘못했는데, 어째서-
조금 전까지 다자이를 겨누고 있던 싸늘한 총구는 오다에게로 향해 있었다. 스스로 머리를 겨누고 있으면서도 그의 얼굴엔 애처로움이 가득했다. 차마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을 것처럼 안타깝고 가엾은 얼굴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사랑해마지 않는 자신의 어린 연인은.
그렇다면 삶의 이유를 애타게 찾고 있던 그에게 안식을 주어야 마땅할 테지만, 오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에게, 약속했으니까.
당신의 복수를 끝으로, 그 어떤 사람도 죽이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자네는, 살아줘. 살아서-”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고 또 원했던 사랑이 자신의 손에서 조금의 재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버렸다. 지독한 저주를 풀어내고, 어떤 미련도 없다는 듯 웃으며 떠나버렸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더는 손에 넣을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던져주고는 그렇게 사라졌다.
다자이는 마지막까지 상냥했고, 또 잔인했던 연인을 끌어안고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당신이 이겼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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