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당신은 알고 있나요?
차마 되묻지 못한 말은 속에서만 응어리져 깊은 한숨으로 토해졌다. 하지만 나의 한숨 소리에 정신이 든 것인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보이면 나는 다시 또 이를 악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분명 그 마음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제단과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내게서 빼앗아간 당신을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이 멍든 마음은 결코 돌아설 일이 없어야 옳았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당신 역시 나를 원망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교차하지 않을 평행선을 그리며 나머지 상대를 지워내지 않고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상태여야 옳았다. 실로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던가. 당신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동양에서 온 어린 소년을 다루는 것은 무척 손쉬운 일이었다. 비록 눈에 보이지도,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어떤 존재를 다루는 힘도 내겐 맥을 추지 못했으니까. 소년은 어렵지 않게 내게 빠져들었고, 소년이 당신의 기대를 벗어나게 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아마도 당신은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당신은 기어코 내게 언성을 높였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어 당신을 조롱했었다.
'결국 당신은 그를 이용했을 뿐이었으면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굴지 마세요. 티엔 정. 보기 흉합니다.'
당신이 내 것을 빼앗았듯 나는 당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았다. 지독한 배신감에 치를 떠는 당신을 나는 몇 번이나 비웃었던가.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그 틈새로 당신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이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그때 내가 읽은 것은 어쩌면 당신의 마음속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이건 함정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회오리가 실은 나를 향한 분노도, 복수심도 아닌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처음 보아왔을 때부터 줄곧 내비치던, 오히려 건조하기까지 하던 평정은 굉장히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 속에는 언제 스스로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연이은 실패로 인해 자신에 대한 절망이 스스로를 좀먹고 있었다. 그의 두 손에서 뻗어 나간 기운은 더욱 맹렬하게 그 주인을 불태웠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뒤로는 진행이 멈춘 것이 더욱 길게 그 줄기를 뻗어 나갔다. 그것에 남자는, 티엔은 겁을 집어먹은 아이처럼 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여전히 굳게 다물린 입술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툭- 그 여린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을 때, 당신은 우습게도 울고 있었다. 그저 겉으로는 인내하며, 그 딱딱한 껍데기를 둘러싸고 있는 주제에 울음을 터트리는 내면은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당신을 덮치기 직전, 나는 왜 당신을 안았었지?
처음에는 드디어 내 손에 무너지게 된 당신에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당신을 내 맘대로 짓누를 기회가 왔기에 나는 스스럼없이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안았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그러했는지 알 수가 없어졌다.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이 그의 이마에 어지럽게 놓여있었고, 막 들어 올린 눈꺼풀 아래 눈동자는 멍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나를 보더니 텅 빈 웃음을 짓는 꼴이 꼭 홍등가의 창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실로 지금의 티엔 정은 그러했다. 당신에게서 희망을 빼앗은 나에게 스스로 몸을 열었고, 팔을 뻗었다.
막 정신이 들어놓고 또 내 옷깃을 쥐는 모습에는 그다지 정성은 없었다. 그 흐트러진 모습이 그랑플람의 Force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토록 무너뜨리고 싶었던 상대인데, 정작 내 손으로 무너뜨렸음에 기뻐해야 좋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집착이 생길 정도로 읽고자 했던 그의 내면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아니, 시끄러웠다. 그의 울음소리가 왕왕 울리는 통에 나는 내가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러볼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티엔은 울기만 할 뿐, 나를 원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어둠에 먹히기 직전 눈을 감긴 내 손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틴...마틴, 챌피.
당신은 이렇게도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은 내가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거짓된 안정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무른 사람은 아니었다. 언젠가 미래를 그리던 한켠에서 스스로 그려보았던 그림이기도 했으니까. 망가져서는 결국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이란, 특히 그 상대가 죽도록 미워하고 원망하던 상대라면? 최고의 쾌락일진데. 나는 왜 가슴이 이렇게 허하게 느껴지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당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내고는 허리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 당신은 느릿하게 눈을 치떠 나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이내 픽 웃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건가?"
"물론이죠. 제가 곁에 있는 한 당신이 당신 안의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당신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으나 곧 피식 웃음 지으며 말을 삼켰다. 그리고 잘도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아 당겼다. 엉겁결에 다시 당신의 품에 안긴 나는 몸을 일으키려 그의 가슴을 밀었다. 하지만 당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 정도면 됐어."
한숨처럼 내뱉은 그의 눈에 조금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곧 거짓말처럼 탁해지며 느릿하게 눈을 감으며 나를 놓아주었다. 다만 그 반동으로 튀어나가려는 내 손목을 붙든 채로 그는 나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만큼...안아다오. 마틴 챌피."
나는...거부할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당신이 가여워, 금방이라도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당신이 불쌍해.
그리고 그것이 신경이 쓰여. 내가 잘못된 건가요, 티엔 정?
'P >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제) 제피는 나쁘지않아 (0) | 2015.07.31 |
|---|---|
| [7월 서코] 다무바레 신간 [구원을, -D의 이야기-] 샘플 (2) | 2015.07.24 |
| 트친오락관 (0) | 2015.04.04 |
| [벨라 모르테 / 세5] 최종 부스 인포 (0) | 2015.03.05 |
| [웨슬바레] 썰 정리 (0) | 2014.11.13 |